Cambridge IGCSE Korean (First Language) 0521 — 2011 Oct/Nov Paper 1 · Variant 1
0521/11/O/N/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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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document consists of 6 printed pages and 2 blank pages. DC (LEO) 39011/1 © UCLES 2011 [Turn over UNIVERSITY OF CAMBRIDGE INTERNATIONAL EXAMINATIONS International General Certificate of Secondary Education * 5 6 6 2 1 1 3 1 8 2 * FIRST LANGUAGE KOREAN 0521/01 Paper 1 Reading October/November 2011 2 hours Additional Materials: Answer Booklet/Paper READ THESE INSTRUCTIONS FIRST If you have been given an Answer Booklet, follow the instructions on the front cover of the Booklet. Write your Centre number, candidate number and name on all the work you hand in. Write in dark blue or black pen. Do not use staples, paper clips, highlighters, glue or correction fluid. Answer all questions. You should pay attention to punctuation, spelling and handwriting. At the end of the examination, fasten all your work securely together. The number of marks is given in brackets [ ] at the end of each question or part question. www.XtremePapers.com
Question paper, page 2
2 0521/01/O/N/11 © UCLES 2011 Part 1 Passage 1 을 주의깊게 읽고 Question 1에 모두 답하십시오. Passage 1 아래 글은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음악>(전인평 지음) 중 ‘사물놀이’를 설명한 글의 일부분입니다. 우리 음악이 짧게는 수백년 혹은 그 나라의 역사와 기원을 같이 하는 아주 오래된 음악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오늘날 공연되는 우리 음악 중에는 의외로 역사가 짧은 것이 많다. 가야고 산조의 역사는 100년 정도이고 판소리는 200년 남짓으로 300년이 채 안 된다. 사물놀이는 민속악회 시나위에서 타악을 담당하던 김덕수 등이 1979년에 처음 연주하면서 시작된 셈이니 채 30년도 안 되어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를 누비는 음악이 된 것이다. 원래 사물(四物)은 불교 용어다. 불교의 일상 의식에서 사용하는 네가지 타악기 즉 범종 법고 운판 목어를 일컫는다. 하지만 사물이 예불이나 특별한 의식에서도 쓰이기 시작했고 사물이라는 말도 북 징 목탁 태평소를 가리키는 말로 바뀌었다가 다시 북 장구 징 꽹과리의 네가지 민속 타악기를 가리키는 말로 바뀌었다. 산중에서 중생을 극락으로 이끌던 사물이 속세로 내려와 신명나는 이승의 한판 극락을 마련해주었다고나 할까. <중략> 사물놀이의 출발은 기존의 농악을 축소 연행하던 관행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하였다. 특히 판굿에서 상대적으로 소홀히 취급하는 풍물가락을 재구성하여 독립적인 음악 장르로 발전시켜보자는 생각에서 시작한 것이다. 사물놀이가 본격적으로 해외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82년 6월 일본 순회 공연부터다. 이후 10월 23일과 24일 미국 플로리다에서 정부 파견 공연 단체로 참가하였다. 이로부터 한 달 후 댈러스 시에서 개최한 ‘세계타악인협회 82년대회’에 참석했고 이때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우리나라 사람들 가슴에 신명을 가득 불어넣은 사물놀이는 이렇게 세계 각지에 소개되었고 사물놀이 애호가를 중심으로 ‘samulnorian’이라는 열광적인 팬클럽이 결성되기도 했다. 현재는 ‘세계사물놀이겨루기대회’를 할 만큼 세계 음악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오늘날에는 초기의 김덕수패 외에 국립국악원패, 뜬쇠패, 두레패, 풍물놀이마당 등 여러 사물놀이 연주단이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고 있다. <중략> 뒤늦게 탄생한 사물놀이가 풍성하게 발달한 이유는 무엇일까? 사물놀이가 출현하기 전 시기에 우리나라는 외래문화가 가장 자연스러운 일상문화로 자리잡고 있었다. 초가집을 걷어내고 길을 넓히는 운동을 발전이라고 믿었던 유신의 분위기에서 사물놀이의 모태가 된 풍물굿은 한낱 미신으로 취급받았다. 그래서 본격적인 산업화가 이루어지던 1970년대 전에는 농촌에서 언제든 들을 수 있었던 풍물이 점차 사라지고 있었다. 5 10 15 20 25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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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0521/01/O/N/11 © UCLES 2011 [Turn over 그러나 도시생활을 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농촌에서 자란 뒤 도시로 온 까닭에 어릴 때의 향수가 있어 풍물굿을 비롯한 우리 음악에 대한 욕구가 잠재한 상태였다. 이런 욕구를 자극한 것이 바로 사물놀이였다. 그렇다고 해도 사물놀이가 갖는 사람을 휘어잡는 힘이 아니고는 이렇게까지 전폭적인 지지를 얻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사물놀이 가락에 대한 강렬한 이끌림은 남녀노소 경계가 없어 필자도 어린 시절에 풍물소리가 나면 아무것도 모르면서 하루종일 따라다닌 기억이 있다. 사물놀이는 풍물굿을 축소한 것이지만 풍물굿이 갖는 민족 고유의 정신세계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사물놀이 공연을 할 때면 무대 한 켠 혹은 중앙에 서낭대를 세우는데 이것의 원형은 지방마다 전하는 솟대다. <<삼국지>> <동이>전에서 신성지역으로 설명한 소도에 방울과 북을 매단 큰 나무가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 뿌리가 어디에까지 닿아있는지 알 수 있다. 아주 오래된 옛날 제천의식에까지 닿아있는 것이다. 신과의 통로로 마련된 소도의 나무는 ‘솟대’로 변했고 그것이 서낭대로 사물놀이 무대에 등장한 것이다. 솟대는 윗부분에 새를 앉히고 밑으로는 땅을 지주 삼는 막대기 형태인데 바로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의 조화를 상징하는 것이다. 네 악기와 사람이 어우러진 사물 놀이판은 하늘로 품어 올라가는 소리를 가진 꽹과리와 징이 하늘을, 무겁고 깊은 소리를 내는 북과 가죽 악기 장구가 땅을 상징해 인간과 우주의 조화를 음악적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중략> 사물놀이는 느리게 시작하여 점점 빨라져서 마지막에 휘몰아치는 장면에 이르고 가장 끝에 가서는 길게 숨을 쉬는 듯한 짧은 악구로 끝낸다. 느리게 시작해 점점 빨라지는 동안 다시 몇 번의 절정이 반복된다. 이것은 ‘긴장과 이완의 멋’과 ‘음과 양의 조화’로 설명할 수 있다. 긴장과 이완이라는 것은 ‘죄고 푸는 멋’ 또는 ‘맺고 푸는 멋’으로 설명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사물놀이는 죄었다가 푸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점점 대단원의 절정에 이른다. 이것은 선율 악기가 아닌 타악기로 음악을 만드는 데서 생겨난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타악기로 음악을 만들자면 강함과 약함, 섬세함과 강렬함, 느림과 빠름 등의 대비로 음악을 전개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물놀이는 금속 악기와 가죽 악기 각각 두 가지로 이루어내는 날카로운 금속성과 부드러운 가죽소리의 조화에서도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이것은 음과 양의 대조로서 음악에 긴장감을 불어넣기 때문이다. 사물놀이는 특히 느린 장단에서 점점 빨라지다가도 충분히 조여졌다고 생각되면 자연스럽게 장단이 바뀐다. 여기서 질서정연한 듯하면서도 끊임없이 변화하는 조화가 이뤄진다. 또한 사물놀이는 자연스러움이다. 사물놀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호흡이다. 이 호흡을 이해해야만 진정한 사물놀이의 아름다움을 알 수 있다. 사물놀이를 실질적으로 이끌어온 김덕수는 “사물놀이에서 호흡은 자연의 이치를 어떻게 인간의 행위를 통해 조화롭게 이뤄내느냐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최고의 힘을 악기에 싣기 위해서는 몸과 마음의 움직임과 일렁임이 자연스럽도록 풀어야 한다.”고 했다. 이것이 바로 자연스러움이다. 장구로 ‘궁-’ 소리 하나를 내기 위해서도 몸과 마음은 자연스러운 상태여야 한다. 그래야 격한 가락이라도 편안히 연주할 수 있다. 35 40 45 50 55 60 65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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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0521/01/O/N/11 © UCLES 2011 1 Passage 1을 읽고 다음 질문에 모두 답하십시오. 답을 쓸 때에는 가능한 지문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 쓰지 말고 자신의 문장으로 쓰십시오. (질문 끝에 있는 괄호 안의 숫자는 각 문항당 점수를 의미합니다. 답안에 사용된 언어 구사력이나 정확성에 따라 5점이 더해집니다. 따라서 총점은 20+5=25점입니다.) (a) 우리 음악 중 의외로 역사가 짧은 음악의 세 가지 예를 쓰십시오. [1] (b) 6줄에서 사물놀이가 ‘세계를 누비는 음악’이 된 구체적인 예를 본문에서 세가지 이상 찾아 쓰십시오. [2] (c) ‘사물’이 가리키는 네 가지 악기가 어떻게 달라졌고 그에 따라 사물이 가리키는 용어에 어떤 의미 변화가 있었는지 설명하십시오. [2] (d) 25줄에서 ‘뒤늦게 탄생한 사물놀이가 풍성하게 발달한 이유’는 무엇인지 본문을 읽고 자신의 문장으로 쓰십시오. [2] (e) 29–30줄에서 ‘농촌에서 언제든 들을 수 있었던 풍물이 점차 사라지’게 된 까닭은 무엇인지 쓰십시오. [2] (f) 37줄에서 ‘풍물굿이 갖는 민족 고유의 정신세계’를 드러내는 사물놀이 무대의 상징물은 무엇이며 그 원형이 갖는 상징적 의미는 무엇인지 설명하십시오. [3] (g) 48줄에서 사물놀이가 ‘인간과 우주의 조화를 음악적으로 승화’시킬 때 네 가지 악기가 각기 상징하는 것은 무엇인지 쓰십시오. [2] (h) 저자는 사물놀이를 ‘긴장과 이완의 멋’과 ‘음과 양의 조화’로 설명했습니다. 본문을 읽고 두 가지 특징의 구체적 내용을 자신의 문장으로 요약 정리하십시오. [4] (i) 저자는 어떤 점에서 ‘호흡을 이해해야만 진정한 사물놀이의 아름다움을 알 수 있다’ 고 했는지 설명하십시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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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0521/01/O/N/11 © UCLES 2011 [Turn over Part 2 Passage 2를 주의깊게 읽고 Question 2에 답하십시오. Passage 2 다음은 <재미있는 우리 국악 이야기>(이성재 지음) 중 풍물놀이를 풀이한 일부분 입니다. 풍물놀이의 역사는 우리 민족의 역사만큼이나 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풍물놀이가 언제부터 어떠한 용도로 시작되었는지 확실한 기록은 없다. 그러나 <동이전>이나 <<삼국사기>> 등을 보면 고대 시대부터 이미 여러 목적으로 쓰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오월이면 밭갈기를 마치고 제사를 지낸 후 여럿이 모여 밤낮으로 술 마시고 노래하며 춤을 추었다.”는 기록은 <동이전>에 나오는 것으로 아마도 이때 반주용 타악기 몇 개쯤은 쓰였을 것이다. 또 <<삼국사기>> 에는 “임금이 군사들에게 북소리와 나발소리를 들으면 모두 나가서 싸우기를 권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것으로 미루어 오늘날의 풍물놀이와 같지는 않더라도 군악대처럼 군대의 사기를 높이거나 신호를 하기 위해 풍물놀이가 쓰이지 않았나 싶다. 이러한 사실은 오늘날 풍물놀이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진법에서도 드러난다. 풍물놀이는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생활에 관한 사회적인 습관 즉 전통적인 세시풍속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국민의 먹거리를 생산하는 농업이 나날이 쇠퇴하고 농촌과 농민이 생기를 잃어가는 오늘날에는 그렇지도 않지만 예전에는 마을마다 으레 풍물패가 있어 설이다 추석이다 단오다 백중이다 큰 명절이 돌아오면 온 마을이 술렁거렸다. 명절의 흥을 돋우는 데는 뭐니뭐니해도 풍물놀이가 제일이었다. 울긋불긋한 고깔에 색스러운 옷을 입고 저마다 악기를 치며 벌이는 풍물놀이는 보기에도 신기하고 흥겨웠다. 한바탕 놀고 나면 풍물패는 풍물을 치며 집집이 다니면서 지신밟기나 고사굿을 해주었다. <중략> 농사일이 바쁜 철이 돌아오면 풍물놀이는 더욱 진가를 발휘했다. 농번기가 되면 마을마다 두레를 조직했다. 두레란 지역 공동체의 연대의식을 밑바탕으로 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공동 노동조직이었다. 두레는 땅을 일구며 살아가는 농투성이들의 힘의 상징이었으며 자부심의 근간이었다. 두레꾼들이 들고 다니는 깃발 아래를 지날 때는 마을을 다스리는 원님도 말에서 내려 걸었다고 한다. 공동작업을 할 때는 두레꾼들을 일하는 사람과 풍물을 치는 사람으로 나누었다. 두레 깃발을 꽂고 일꾼들이 논으로 들어가면 풍물패는 태평소를 불고 풍물을 치며 흥을 돋우었다. 일이 진행됨에 따라 장단은 더욱 빨라지고 일하는 사람들은 함성을 지르며 일을 몰아갔다. <중략> 5 10 15 20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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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0521/01/O/N/11 © UCLES 2011 풍물놀이는 또 동학농민혁명 때 동학군을 훈련시키는 데 쓰였다는 기록이 전해지는데 이것으로 풍물놀이가 때로는 전쟁음악으로도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늘날에는 풍물놀이를 재구성해 만든 사물놀이가 일하는 사람들의 삶의 현장이 아닌 무대예술로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긴 역사를 가진 풍물놀이는 이처럼 시대의 변화에 따라 쓰임새와 놀이형태가 다양하게 달라져왔다. 풍물놀이는 음악과 춤과 놀이가 한데 엮어진 종합적인 집단 행위예술이다. 지방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대체로 꽹과리를 중심으로 장구 북 징 소고 등의 타악기와 유일한 선율악기인 새납(태평소)을 가지고 여러가지 장단을 치며 놀이를 한다. 풍물놀이에서 악기를 치는 사람을 앞치배라고 한다. 또 악기를 치지 않고 춤을 추거나 익살을 부리며 판의 흥을 돋우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포수 남자광대 무동 (상쇠의 목말을 타고 춤추고 재주 부리는 아이), 여자로 변장해 춤추는 사람, 양반, 중, 탈광대 등으로 분장한다. 무동놀이는 어깨 위에 두세명의 어린이를 층층이 태우고 맨 위의 어린이는 춤을 추게 하는 아슬아슬한 재주로 보는 사람의 손에 땀을 쥐게 한다. 2 Passage 1과 Passage 2를 잘 읽고 다음 물음에 답하십시오. [15 marks] 두 텍스트에서 사물놀이와 풍물놀이(풍물굿)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아 자신의 문장으로 정리하여 쓰십시오. 답안의 내용에 따라 15점까지 주어지며, 답안의 언어구사력에 따라 추가로 10점이 주어집니다. (문체와 구성에 5점, 언어의 정확성에 5점) 30 35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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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0521/01/O/N/11 © UCLES 2011 Copyright Acknowledgements: Question 1 Adapted from © Jeon, Inpyong; Uriga jeongmal alayahal Uri Eumak ; Hyeonamsa; 2007. Question 2 © Lee, Seongjae; Jaemitneun Uri Gukak Iyagi ; Seohaemunjib; 2006. Permission to reproduce items where third-party owned material protected by copyright is included has been sought and cleared where possible. Every reasonable effort has been made by the publisher (UCLES) to trace copyright holders, but if any items requiring clearance have unwittingly been included, the publisher will be pleased to make amends at the earliest possible opportunity. University of Cambridge International Examinations is part of the Cambridge Assessment Group. Cambridge Assessment is the brand name of University of Cambridge Local Examinations Syndicate (UCLES), which is itself a department of the University of Cambridge. BLANK PAGE